좋은데 가자 by 불나방

팀이 맡았던 프로젝트 시안 통과가 확정됐다. 물론, 신입인 나는 업무보조를 도우며 일을 배웠기에 작업진척에 하등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뭐 어쨋든, 신나서 부어라 마셔라하는 회식자리가 끝난 후, 2차 노래방에서 간부급들이 자리를 파하고 헤어지는데 선배님 두분이 싱글싱글 웃으며 좋은데를 가자고 했다. 그것도 뿜빠이로, 이 선배님들아 보통은 당신들이 내 주시질 않나요.

순간 갈등했다. 평소같으면 누가 돈을 내준다고 해도 별로 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하룻밤 여자와 만나 놀고 싶으면 클럽이나 나이트를 가는게 더 마음 편하고 재밌다. 그런데 얼마전 여자친구와의 결별이 심정의 변화를 겪게 한 탓일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미 헤어진 여자친구(회사에 굳이 헤어졌다고 보고할 필요는 없으니까)핑계를 대고 들어오긴 했는데, 집에와서 내가 왜 이런문제를 가지고 고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성매매업소를 꺼리는 이유는 뭔가 대단한 도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 예를들어 인간의 존엄성 확립이라던가, 여성인권 신장이라던가 하는 문제들 - 서가 아니라 그냥 별로 안땡기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그냥'은 아니고 아직까지 내가 수컷으로써 여성에게 섹스어필을 할 수 있기에 굳이 성을 매매하는 곳에 갈 필요가 없다는 마음이 기저에 깔려있다. 그런데 얼마전, 나는 근 1년을 가까이 연애를 지속해 가며 종내엔 나에게 완전히 질렸다는 여자에게 이별을 선고받았고,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훼손된 것 같다. 사실 이번에 헤어진 여자친구에겐 상당히 만족감이 큰 상태였고, 그 여자와 몇년쯤 더 같이 지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거의 뒷통수를 맞듯, 그렇게 이별을 선고받았다. (사실, 그 지경까지 상황을 몰고가는데도 여자친구에게서 아무런 심경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내 무심함과 병신성이 더 큰 문제기에 뒷통수를 맞았다는 표현엔 어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좋은데 가자'라는 말이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정말 여러번 생각하는거지만, 나는 겉으로 보이는것보다 왜 이렇게 심성이 약한건지 모르겠다. 만나는 여자가 없다는 사실은 날 안절부절하게 만든다. 생활에는 변한 점이 없고, 단지 집에 와 둘이서 하던걸 혼자서 하고있을 뿐이다. 집안일도 척척 해 가며 저번 주말에는 혼자서 코트까지 단단히 차려입고 나가서 예술의전당에서 하고 있는 국제 그림책 원화전을 보고,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어 전우치도 보고, 마지막에 혼자서 빠에도 갔었다. 그런데 차라리 명동거리에서 삼겹살을 혼자 구워먹는게 나을 뻔 했다. 그냥 혼자 술이 먹고 싶었는데 호프집에 가긴 좀 그렇고, 그래서 근처에 보이는 아무 빠에나 들어갔는데 왠 쉐이크도 할줄 모르는 여자애들이 그 추운날씨에(물론 안은 따뜻했지만) 민소매 옷을 입고 위스키를 따라주며 바텐더라고 나오는곳이였으니, 나 순간적으로 코트 벗어서 걸쳐줄 뻔 했다니까. 그나마 술값이라도 싸지 않았다면 들어갔던 가게를 도로 뛰쳐나올 뻔 했다. 뭐 그렇게 잘 지내며 스스로 변한점이 아무것도 없어서 놀라고 있을 무렵, '좋은데 가자'라는 소리를 듣고 이렇게 얼빠진 생각을 하고 있으니 내가 이별한게 실감이 난다. 빨리 다시 연애를 해야겠다. 처량해서 도저히 않되겠다. 연애하고 싶다. 다시 만나고 싶다. 자꾸 미련이 남는다. 이상하게 눈물은 안나오는데 문득문득 자꾸 답답하다. 지금도 답답하다.


시계없이 파티를 즐겼던 신데렐라처럼 by 불나방

사실 언젠간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시계가 안보인다고 시간이 안가는건 아니니까.
마냥 행복했다고 끝이 없는건 아니니까.
신데렐라는 12시를 알리기 시작하는 종소리를 듣고 도망치라도 했었지. 유리구두 하나쯤 흘리면 어때, 그정도면 싸게 먹힌거야.
나는 그런 시계도 없이 12시를 맞았네.
마법이 풀리는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춤을 추다가 턱, 하니 끝을 맞았어.
얼마나 당황스러워, 얼마나 창피할꺼야.
어찌나 신나게 춤을 춰댔는지 음악이 멈춘지도 모르고 한참동안 더 춤을 췄다니까? 그것도 무반주로 말이야.
광대가 됐지, 충만하고 행복했던 내가 한순간에 광대가 됐어.
동화속의 신데렐라는 다행히 12시가 되기 전에 도망쳐서 왕자를 붙잡았다지.
도망치지 못한 신데렐라는 어떻게 하지.
뭐, 동화속의 신데렐라가 도망치지 못했다면 절벽에 몸이라도 던졌겠지, 동화속 비련의 여주인공이니까
그런데 난 그냥 계속 부끄러워만 하고 있을것 같아, 물론 언젠간 잊혀지겠지만 잊혀질때까지는 부끄러워 할 것 같아.
아니라고? 내가 안힘들어 할 것 같다고, 난 당신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니까 괜찮을 것 같다고?
그래, 그럼... 그러지 뭐.


아쉬움 by 불나방

사실 끝까지 숨길 수 있었다면 숨기고 싶었었는데, 취직한 곳에서 동기인 여자가 고백을 해왔다. 결국 휴대폰 관리에 무심한 댓가를 치뤘다고 해야 되나, 턱없는 믿음의 대한 대가를 치뤘다고 해야 되나 여자친구가 내 문자함을 보고선 결국 나에게 화를 냈다.

기본적으로 같이 살고 있으면서도 서로의 생활에 지나친 개입없이 잘 지내오고 있던 터라 현재의 관계에 꽤 만족하고 있었다.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연인관계에 7,80% 정도 가까웠다고 말 할 수 있을정도였으니까. 그중에서도 서로 사생활 존중, 그러니까 흔한 말로 바람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서로의 휴대폰의 통화나 문자기록을 훔쳐본다던가 하는 영역에서의 사생활 존중을 가장 기껍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 처하자 굉장히 기분이 나빳다. 그래서 처음엔 상황을 설명하는 대신에 여자친구의 행동을 비난했다. 그러면 않되는 거였는데.

뒤에 생각해 보니 충분히 오해 할수도 있는 상황이였는데, 내게 왔던 대략 600바이트 가량의 mms (이렇게 긴 문자를 받아보는것도 오랜만이였던 것 같고)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난 너를 좋아하는데 너는 이미 애인이 있다. 하지만 난 그걸 알고도 널 좋아할것 같다. 나랑 사귀면 않되겠느냐라는 문자였다. 나는 이런 얘기를 문자나 전화로 하다보면 똑같은 텍스트를 전달했음에도 오해가 생길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경험을 해 봤기에 일단 '그쪽 얘기는 알아들었으니 나중에 만나서 얘기합시다' 라고 짧게 답장문자를 보내고 이후 만나서 잘 얘기해서 거절한 상태였다. 그 이후로 서로간의 오간 연락의 내역이 없으니 오해를 했던것 같다. 내가 연락을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음에도 일부러 내역을 지워가면서 계속 연락을 했다는 오해를. 사실 그 얘길 듣고 좀 어이없었던것이, 내 여자친구는 만약 연락을 지속적으로 할 거였으면 당연히 그 문자도 지웠을 거라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그 문자를 보자마자 열이 올라 잠시 판단력이 흐려졌던 것일까? 물론 그 문자들이 보관함 거의 맨 마지막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실수로 못지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나를 만나면서 내가 그렇게 허술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 걸까?

꽤나 오랜만에 싸웠는데, 나는 그동안 나와 여자친구의 관계를 나름대로 소중히 여기고, 여자친구에게도 만족하고 있었는데 여자친구가 화를 내고 울며 털어놓은 얘기를 들어보니 내 여자친구는 나만큼 행복하지는 않았었나 보다. 아마 그동안 여자친구는 물컵에 끝까지 찬 물이 찰랑대며 표면장력으로 버텨오듯이, 그런 아슬아슬한 상태였었나보다.

당분간 바깥에 있겠다며 행선지도 말해주지 않는 여자친구와, 그동안의 관계, 그리고 나에대한 진한 아쉬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전화는 좀 받아줬으면 좋겠는데, 나도 표현은 잘 안하지만 거의 하루종일 아무런 일도 못할만큼 걱정이 되는데 말이지.
물론 원래 성정이 차분한 사람이니까 엄한 행동은 안하겠지만 그래도 어디 가 있다고 말해주면 잘 지내고 있구나 생각은 할텐데 답답하다.

지금도 생각나는 대사 by 불나방

몇년 전 쯤에 극장에서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라는 영화를 보러갔었는데 정말 크게 웃었던 장면이 있었다.

대판 싸우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때 사라 역의 브리트니 머피가 남자주인공을 바라보며 직원에게 날린 말
"제 남편 직장에 1kg의 코카인이 숨겨져 있어요"
그리고 다음컷엔 남자주인공이 엉덩이를 부여잡고 절뚝거리면서
"이번 신혼여행의 첫 섹스상대는 남자였어"

아 몇 안되는 좋아하던 외국배우였는데. 2009년엔 죽는사람이 왜이렇게 많은것 같지...

가치를 인정하기 by 불나방

돈이 많은 사람을 만날 때 하지 말아야 할 말들중에 최악은 아마 "난 너의 돈이 아니라 널 사랑하는거야" 가 아닐까 한다. 뭐 그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올수도 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살아가는 청장년중에 저 말을 진심으로 내 뱉을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것이다. 살다보면 가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하늘은 하늘이며 땅이 내 이불이요 하늘이 내 지붕이요 구름이 내 베게... 그만하고, 뭐 그렇게 안빈낙도를 즐기며 사는 사람도 만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가끔이다 가끔.

혹시나 속물적으로 보일까봐,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을 애써 무시하는 사람이 있는데, 굉장히 웃긴 짓이다. 자연스럽게 그 '어떤 것'에 신경쓰이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만남이 시작되고 호감을 주기 시작하는 와중에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장점, 그것이 돈이 되었든, 혹은 외모가 되었든, 학벌이 되었든간에 그런 장점들이 한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 있어 영향을 미쳤다면 그걸 인정해 주는것이 나을 것이다. 굳이 마음만 보고 만나야 그게 진정한 만남이고, 진정한 사랑이라고 누가 그랬나? 아니 설령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까지 거짓말 할 필요가 있나 싶다. 또 그 '어떤 것'을 애써 배제하려고 한다면 그건 상대방한테도 실례가 되는 일이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의 가치를 알고, 외모가 출중한 사람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학창시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 사람은 자신의 노력의 가치를 안다. 그런데 자신이 만나는 사람이 자신의 그런 장점들을 애써 무시하는 '척' 한다고 생각해 보자. 내 마음만 사랑해 줘서 존나조쿤? 과연 그럴까? 아니 내 경우엔 '척' 하는게 아니라 정말로 신경 안써줘도 기분 나쁘던데 말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하고 싶은 얘기는 이거다. 상대방의 장점에 호감을 느꼇다면 솔직히 인정해 주자. 그 장점이 설령 세상에서 속물적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수 있는 것이라 해도 그걸 애써 배제시킬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과 만나서 연애할 땐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을 인정해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 포장해 보고 싶다면 이렇게 말해 보던가 "난 너의 돈을 포함한 너의 모든것을 사랑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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